가몽

2014/05/26

학교는 영어를 가르칠 수 없다.

왜 학교는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을까? 간단하다. 영어라는 과목은 현재의 교실 수업 체제 및 시간표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는 속성상 과학이나 수학보다는 음악이나 체육과 일맥 상통하는 과목이다. 영어를 생각하지 말고 체육을 생각해 보자. 만약 학교 체육 수업만으로 축구 선수, 야구 선수, 무용 선수(혹은 무용가)가 될 수 있을까? 질문 자체가 너무 어리석어서 아무도 이런 질문에 상대를 안해 줄 것이다. 학교 체육 수업은 선수가 되는 것과는 100만 광년 쯤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학교의 체육 수업만 충실히 받아서 운동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체육 시간을 늘리고 선생님들의 수를 늘리면 어떨까? 방과 후 활동까지 강화하면 어떨까? 설사 이런 조치를 취해도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 위주로 자신의 자질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비약일까? 실제로 유명한 운동 선수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 수업에 출석하는 날이 극히 적었다고 하는데, 만약 학교 시스템에서 체육 부분이 강화되면, 그들은 학교 수업 중심으로 자신의 기량을 연마했을까? 그렇더라도 학교 수업을 중심으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우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일반 학교의 시스템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공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영어가 왜 현재의 일반 학교 시스템에서 학습하기 부적절한지는 비교를 통해서 생각해 보자. 영어와 유사한 계열이 예체능 쪽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예체능 전문학교와 일반 학교를 비교하는 것이 간단하다.

언젠가 TV에서 축구 전문 학교가 방영된 적이 있다. 브라질에 있는 학교였는데, 그 곳의 수업은 실습 위주였다. 사실 하루 종일 축구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레 학교나 음악 학교도 마찬 가지이다. 정규적인 이론 수업은 말 그대로 양념일 뿐이고 학생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훈련에 쏟고 있었다.

이렇듯 하나의 기능을 완성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여애야 한다. 몇마디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설명의 이해는 시작에 불과하고, 나의 몸과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여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반복 훈련하는 것이 예체능의 기본 공식이다.

본론으로 돌아 와서, 왜 일반 학교는 영어를 습득시키기에 부적합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반 학교는 [양적 기준]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메 비해 예체능 계열 특수 학교나 학원은 질, 즉 완성도를 기준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일반 학교의 수업 시스템은 일주일 몇 시간, 한 학기에 몇 시간-과 같이 공부할 시간의 양과 교과서라고 하는 컨텐츠 양을 주축으로 결정되어 있지만, 질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부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학교는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컨텐츠에 학생들을 노출시키는 데 주력할 뿐이고, 습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전무하다. 그후 학교는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시험이라는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보낸다. 과목당 몇 점, 등수 등과 같은 내용이다. 스펙용 평가이다.

평가에는 두 가지 종류의 평가가 있다. 하나는 학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평가가 있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와 비교하기 위한 평가(일명 스펙용 평가)가 있다.

예체능계에서도 스펙용 평가는 있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평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령 축구 전문 학교에서 코치(혹은 담당 선생님)은 훈련 시간 때마다 전부 혹은 일부 선수의 기량을 체크한다. 일종의 평가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선수들의 서열을 정하고 점수를 매기려는 것이 아니고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집중 연습해야 할 과제를 찾아 내기 위한 것일 경우가 많다. 즉, 완성도 중심의 시스템에서 평가는 학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 하지만 수량 중심의 일반 학교 시스템에서 평가란 그저 비교와 전시용이다. 즉 스펙이외에는 쓸모가 없다.

선생님의 역할에서 있어서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실 예체능계의 선생님은 선생님이라기 보다 코치에 가깝다. 이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역량을 발휘했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직 프로 축구 선수였던 사람이 축구 학교에서 교사로서 혹은 코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전문적 교사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실전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평가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학생들의 역량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들이 평가를 위해 종이로 된 시험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이들 특별한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개개인이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 자신들의 눈과 귀로 학생들의 기량을 직접 점검하고 평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의 목적이다. 이들 특수 학교 코치(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단순히 점수를 매기기 위한 평가를 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인상을 쓰면서 말할 것이다. 그런 짓을 왜 하죠? 라고.

한국에서 영어 교사는 영어를 실생활에 사용할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해 필자가 딱히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자신과 학생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원어민 선생님 운운하는데, 이들이 좋은 영어 선생님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영어는 영미인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이 매우 잘못된 편견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영미인은 영어가 모국어이니까 특정 표현의 의미나 말의 뉘앙스까지 설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이지 언어 능력은 아니다. 정말 훌륭한 선생님은 외국어를 배워서 실용적 단계까지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영미인은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은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 혹은 외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영미인은 결코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영어에 관한 지식이지 활용할 수 있는 영어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의 경험에 의하면 외국어를 배우면서 몇 번인가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일종의 습득에 의한 쾌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인데, 이런 것을 하나씩 겪을 때마다 동시에 자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공부를 했던가 하고 후회하게 된다.

외국어 습득에 있어서 이런 경험을 못해 본 사람들은 결코 훌륭한 코치가 될 수 없다. 프로의 완성도에 이르면, 현재 하고 있는 학습 행태의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은 그런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테크닉을 갖게 된다. 아마추어의 완성도에도 근접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웃기는 교육론은 그저 고개를 갸웃하게 할 뿐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외국어를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습득한 사람만이 학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능력 습득을 위한 지도를 그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반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없는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학교 시스템 자체가 완성도를 요구하는 과목에 관심이 없다-라는 점이다.

영어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학교 시스템만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걱정되는 것은 부모들의 태도이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를 보면 백화점을 연상하게 된다. 과목이라는 상품을 잔뜩 진열해서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는 느낌은 너무 과장된 것인가? 특히 초등학생 방과후 학교 관련해서 학교에서 주는 프린트들을 보면 마치 쇼핑 안내 목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한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기술이나 기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습득하는 것은 돈으로 물건을 사듯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인내와 노력을 들이고도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술이나 기량 학습도 일주일에 한 두 시간짜리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소한의 완성도도 기대할 수 없을 텐데도 버젓이 방과후 활동 선택항목에 들어가 있다.

즉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계획과 관리는 사라지고 단지 콘텐츠에 노출시키는 의도로 기획된 각종 사이비 과정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화내는 사람들이 없다. 아마도 이유는 비용이 싸고, 둘째는 내 아이는 이런이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자기 만족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싸구려 과정의 폐해는 아주 간단하다. 학생들이 아무것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완성도에 관한 개념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많은 어린 아동들이 [출석 = 습득]이라는 공식에 젖어 있고, 많은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이 이런 착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과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풍조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장바구니 교육이다. 과목을 선택해서 장바구니에 넣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교육 시스템으로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교육 과정이 [컨텐츠에 대한 노출] 즉, 출석 시간 채우기식 시스템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완성도에 관한 책임은 전부 학생에게 돌아가도록 설정되어 버렸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무개념으로 초등-중등 과정을 보낸 학생과 학부모는, 아이가 고등학생 정도 되면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단. 학생은 “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야.”라고 말하고, 부모는 “우리 애는 공부 쪽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중국어도 해 봤는데, 안 돼요.”라고…

이런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학습의 완성도]에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학교 교과목을 홈쇼핑 상품 정도로 보고, 시간표를 채우는 것을 돈 내는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결국 순서 매기기 평가에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는 예체능 계열과 유사한 과목이다. 즉 완성도를 관리해야 하는 과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량 중심, 컨텐츠에 노출시키는 것 중심의 학교 시스템 하에서는 결코 습득할 수 없는 과목이다.

일반 학교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영어는 결코 학교에서 습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학교 체육 수업만 받고 국가 대표 축구 선수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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